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첼 페이지 (문단 편집) === [[니그로리그]]와 중남미 리그의 전설 === || [[파일:external/static.ddmcdn.com/satchel-paige-hof.jpg]] || || 뉴욕의 니그로리그에서 뛰던 시절의 사첼 페이지. || 사첼 페이지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니그로리그]]의 전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장신인 192cm의 키를 가진 페이지는 긴 팔다리를 최대한 이용해 엄청난 강속구를 뿌렸고, 1930년대 니그로리그의 여러 팀에서 활약을 한다.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페이지는 20여년 이상 니그로 리그, 멕시칸 리그, 각종 독립 리그를 순회하며 2000경기 이상에 등판했다고 한다.[* 당장 니그로 리그 시절에도 '''약 20개 팀을 순회하면서''' 미국 전체에서 적을 두고 활약했다.] 사첼 페이지의 기록은 너무나도 놀라워 지금까지도 여러 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는데, 일설에는 '''승리만 2000승'''이라고도 한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우선 니그로 리그에서는 최고의 스타이자 흥행 보증 수표인 페이지의 등판은 매년 100경기를 전후했고, 니그로 리그가 종료되면 멕시코 리그나 독립 리그 등에서 뛰면서 매년 200경기 정도를 등판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니그로 리그의 팀에서 뛴 것을 봐도 알 수 있지만, 부르면 거절하지 않고 뛰어주고,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른 리그로 떠나는 형태의 상상을 초월하는 플레이가 이루어졌다. 때문에 사첼 페이지의 전설 가운데 1년 최고 기록은 '''141승 1패''', 혹은 '''연 평균 100승''' 등 어지간한 투수의 커리어 기록이 나온다. 때문에 2000승은 몰라도 1000승은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부지기수이다. 일단 데뷔부터 은퇴까지 기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경기 수도 답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모두 그가 가진 야구에 대한 순수하고도 무한한 열정에서 비롯된다. 야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공을 던지는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지금도 사첼 페이지는 어디선가 공을 던지고 있다' 고 말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50타자 연속 삼진''', '''수비수들을 모두 덕아웃으로 보내 놓고 9구 3탈삼진으로 이닝 종료'''[* 이 건 당시 메이저리그 기준에도 규정 위반이라 신뢰하기는 어렵다. 야구는 과거부터 포수를 제외한 8명의 수비수들이 페어라인 안쪽에 있지 않으면 경기 진행을 못하는게 규칙이다. 정신 나간 심판이 독단으로 허가했다 해도 인정도 안 되고 모든 플레이가 다 무효가 된다. 한국 프로야구의 김기태 감독 사건(3루수를 포수 뒤에 서 있게 하다가 제지당한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니그로 리그에서 이벤트성으로 규정을 안 지켰을 수도 있지만.], '''워밍업 때 성냥갑을 홈 플레이트 삼아 스트라이크 던지기''' 등 확인되지 않은 민간 신앙급 전설이 퍼져나갈 정도로 확실하게 경기를 압도하는 투수였다. 문제는 그 누구도 정확한 기록을 알지 못해서 과장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1920년대부터 니그로 리그에서 활약한 그의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니그로리그 선수들에 대한 근거 있는 정확한 자료가 없어서 많이 부풀려진 면이 있겠지만, 1932년 이벤트로 치러진 메이저리그와 니그로 리그 대표팀 간의 경기에서 사첼 페이지는 메이저리거들을 상대로 위력적인 공을 구사했다. 1930년 메이저리그 올스타들을 상대로 '''22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완봉승을 거둔 것과 뒷날 1948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여 나이 40 중반인데도 150km이상의 직구를 뿌린 것을 감안하면 신빙성이 있는 주장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여담으로 저 메이저리그 팀의 선발투수가 다름 아닌 [[디지 딘]]인데, 사첼 페이지에게 두 번 다 졌다고 한다. 이후, 디지 딘은 뻑이 가서, "내가 본 역사상 최고의 투수"라고 극찬했다.][* 이 때 [[베이브 루스]]는 나오지 않았다. [[인종차별|흑인하고는 같이 경기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근데, 삼진 당할까봐 못 나왔다는 [[디지 딘]]의 주장도 있긴 하다.] 1936년 사첼 올스타팀과 양키스 마이너리그팀과 열린 시범경기에서도 9이닝 1실점 12K를 기록한다.[* 여기서 사첼에게 1안타를 친 [[조 디마지오]]는 선수 시절 내내 그의 자랑거리였다고 한다.] 많은 메이저 리그 선수들도 페이지의 기량은 인정하고 있었으니, 그가 당시 최고의 투수였음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저 믿기 어려운 전설이지만, 전성기가 지나도 한참 지난 40대에서야 데뷔했던 메이저리그에서 세운 기록과 메이저리그에서 유명세를 떨친 스타들이 일관되게 그를 최고라고 인정했다는 증언들만 바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비공인 기록. 참고로, 메이저리그와 니그로리그의 역대 전적은 6할대로 니그로리그가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혹자는 니그로리그의 메이저리그 상대전적이 268승 168패라고 하고, 혹자는 309승 129패라고도 한다.] 이 데이터 때문에 니그로리그의 수준이 메이저리그보다 높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니그로리그와 메이저리그 간 우열 논쟁은 00년대부터 있어왔다. [[https://www.baseball-fever.com/forum/general-baseball/the-negro-leagues/2910-negro-leagues-vs-major-leagues|해당 자료]]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대표팀에 진짜 메이저리거가 5명 정도만 끼어있어도 메이저리그 올스타로 간주했다. 즉 메이저리거를 5명만 넣고 나머지 자리를 마이너리거 내지는 아마추어 선수로 구성해도 '메이저리그 대표팀'이 되었다는 것. 니그로리그 팀이 메이저리거가 4명~6명이 포함된 '메이저리그 대표팀' 상대로는 .615의 승률을 기록하며 압도한 건 사실이지만, 7명 이상의 메이저리거가 포함된 '메이저리그 대표팀' 상대로는 승률이 .451로 폭락했다. .451이 준수한 성적이긴 하지만 1위팀과 꼴찌팀 사이의 승률 격차가 잘 나지 않는 야구 특성상 니그로리그 팀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더라도 메이저리그 팀들을 압도했으리라 보기는 매우 힘들다. 한 예로 [[2022 KBO 리그]] 8위였던 [[롯데 자이언츠]]의 승률이 .457이었다. 더구나 메이저리거들이 한창 경기를 하는 시즌 중에는 니그로리그 팀과 경기를 할 수 없으니 주로 오프시즌에 대결을 했는데, 오프시즌에 시범경기 하듯 경기를 했을 메이저리거들이 제 기량을 펼쳤을 지도 의문이다. 또, 위의 링크에서 메이저리그와 니그로리그 팀이 쿠바 팀과 붙었을 때의 전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 메이저리그 팀은 쿠바 팀 상대로 .601, 니그로리그 팀은 쿠바 팀 상대로 .478을 기록했다. 결론은 당시 니그로리그가 수준이 높긴 했으나 소수의 탑급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물론 사첼 페이지는 니그로리그에서 최고의 투수였으니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더라도 잘 했을 것이며,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수준의 성적을 냈을 수도 있겠지만 몇몇 사람들의 호들갑처럼 [[월터 존슨]] 이상의 투수라느니 메이저리그를 폭격했을 것이라느니 하는 예측은 과장된 면이 있다. 구전 설화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50타자 연속 삼진, 통산 2000승 등의 '신화'는 [[https://www.baseball-reference.com/players/p/paigesa01.shtml|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첼 페이지의 통산 성적]]과 괴리가 있다. 물론 니그로리그의 기록이 완전치 못하다는 지적도 있지마는, 기록원이 페이지의 컨디션이 영 별로일 때에만 기록을 남겼을 리는 없으니 기록으로 남은 것과 큰 차이가 나는 선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페이지가 니그로리그에서 보여준 모습을 다른 선수에 빗대어 이야기하자면 대략 전성기의 [[크리스 세일]][* 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 제공하는 유사도 점수(Similarity Scores)에서 909점으로 1위다. 158이닝만 던지고도 bWAR 6.5/fWAR 6.2를 기록한 2018년의 포스를 감안하면 전성기 때는 세일이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가 맞았다.] 내지는 [[제이콥 디그롬]] 수준이었는데, 이들도 50타자 연속 삼진을 잡고 동료들을 전부 덕아웃에 앉혀놓고 3타자 연속 3구삼진을 기록하는 재주를 부리지는 못했다. 그리고 페이지가 45살~46살에 보여준 좋은 투구내용 역시 그 자체로만 평가를 해야지 '40대 때도 이렇게 잘 하는데 20대~30대 시절이었다면 얼마나 잘했을까?' 같은 가정은 큰 의미가 없다. 40대 중반에 호투를 펼친 케이스가 사첼 페이지 혼자 뿐인 건 아니며, 유명한 선수들 중에서도 [[필 니크로]], [[놀란 라이언]], [[제이미 모이어]] 등 45살~46살 때도 젊을 때 못지 않게 잘 한 선수들이 있다. 물론 이들도 메이저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명선수들이니 그 선수들처럼 나이 먹고도 잘 했던 사첼 페이지 역시 메이저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 것이다! 정도의 추측은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요컨대 여기서 사첼 페이지의 비교대상으로 꼽힌 선수들이 [[필 니크로]], [[놀란 라이언]], [[제이콥 디그롬]], 전성기 때 [[크리스 세일]]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 페이지는 당대 최상급 선수였고 어려서부터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더라도 명예의 전당에 오를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젊었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니그로리그에서 타자들을 압도하는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나이를 먹어서도 기량이 잘 떨어지지 않는 여타 특급 선수들처럼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메이저리그에서 통하는 기량을 보여주었다. 더구나 남겨진 기록만 보더라도 안타 잘 안 맞고 삼진 잘 잡는, 현대 야구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투구 스타일을 보여주므로 어깨가 싱싱할 때부터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더라면 300승, 3000삼진 등 ~~어쩌면 4000삼진까지도?~~ 유의미한 마일스톤을 달성했겠지만 역대 최고의 투수라고 불리기에는 남겨진 기록이 너무나 적다. 그리고 소수의 남겨진 기록이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페이지의 기량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만한 명선수라는 점을 보여주는 한편, 데드볼 시대의 [[월터 존슨]]이나 라이브볼 시대의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 수준의 선수가 될 수 있었느냐에 대해선 확신하지 못하게 만든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인종차별이 만연한 시대에 태어나 자신의 모든 것을 역사에 다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비운의 대투수라는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